천년이 두 번이나 바뀐 지금
예수님의 원래 모습을 그려낼 수 없기에
후대 예술가들의 영감에 의지할 수 밖에 없겠지요.
우리가 늘 보아왔듯 예수님은
긴 머리의 파란 눈동자에 잘 생긴 이태리풍의
서구 백인 남성의 모습 보다는
이 어색한 아랍스타일이라고 하면 좀 어색해보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좀 촌스럽게 보여도
주님은 평범한 첫 번째 그림처럼 유대인으로 태어나신 게 맞지요
베드로처럼 사투리를 쓰셨을 것이고
가난한 목수로 일하신 갈릴리 출신의 주님이시죠.
그렇다고 형편없는 모습은 아니셨을 겁니다.
예민하고 극악한 대적들도
주님의 외모에 대해 꼬집은 구절이 없으니
적어도 우리 주님은 흠잡히지 않을 만큼
수염이나 머리나 옷은 반듯하게 하시고 다니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히 궁굼해집니다.
주님은 옷을 맵시나게 입으셨을까?
혹 지도자들이 입었을 법한 부티 나는 프라다류의 옷을 어떤 시선으로 보셨을까?
집도 없으셨기에 저 멀리 보이는 타워팰리스를 넋 놓고 바라보시지는 않으셨을까?
먼지 나는 거리를 지치도록 다니시다 대로를 지나는
고급 승용 마차에 시선을 떼지 못하신 적은 있으셨을까?
ㅎㅎ
물론 그 어떤 세상 것들도
주님의 마음에 파고 들지 못했겠지요.
그저 그 옷을 입은 ‘사람’,
그 집에 사는 ‘사람’,
그 마차를 타고 있는 ‘사람’만이
당신 마음에 밟히여 주님을 힘들게 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와 다르게 물건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셨습니다)
요한이 계시 중에 어린양 예수님을 보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다”(요5:6)라고 합니다.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면
얼마나 처참하고 이상한 모습이였을지 상상해봅니다.
이사야도 주님을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고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사53:1-2)고 묘사했죠.
게다가 ‘멸시와 간고를 많이 겪고 질고를 아는’ 분이시라 했는데
대체 주님의 모습이 어떠셨길래
간고와 질고를 많이 겪은 분으로 보이게 했을까요?
바로 앞장에서도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다 합니다.
얼마나 얼굴과 몸이 상하였으면
사람들이 놀랄 정도일까요?
주님의 얼굴은 과연 어떤 모습이셨을까요?
주중 예배 날에 통통한 얼굴에 근사한 모습으로
기름으로 머리를 넘기고 설교하는
현대의 목사들과 과연 조화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 얼마나 기도와 고민과
사랑의 근심이 가득하셨으면 얼굴이 그리 상하시고
심지어 유대인들이 주님을 향해
“네가 아직 50도 못되었는데...”(요8:57)라고 말했을까요?
30대 초반의 젊은이가 50대로 보였다면...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자면 정말 상하고 상한 것이지요.
주님 뿐 아니지요,
다음 구절에서 바울의 겉보기 나이를 짐작할수도 있답니다.
* 고후 11:23-28
바울은 자기가 수고하고, 투옥당하고, 매질당하고,
태장으로 맞고, 파선당하고, 강도당하고, 살인위협에,
거짓고소, 굶주림, 헐벗음, 추위 등등을 힘들게 겪었노라고 다 나열한 후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8)
<날마다> <가슴 눌리면> 그 사람은 성할까요?
염려로 <매일> <가위 눌리면> 그 사람의 얼굴은 온전할까요?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바울의 마음은 여전합니다(롬9:1-3)
자신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데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해서 나의 구원도 포기하겠다는 고백을 합니다.
마음에 <큰 근심>이 있는 사람은 어떨까요?
일상 고통들은 잠시 그치기라도 하는데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사람은 얼굴이 어떨까요?
왜 주님 얼굴이 놀랄 만큼 상해 보이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얼굴도 나이에 맞는 제 얼굴이였을까요?
누구보다도 영혼을 많이 인도하고
자신의 구원은 확신하고 산 위대한 사도 바울이 이 정도면...
우리는 어때야 하는지...
상해도
아주 상해야 맞는 것이겠죠.
많은 환란을 당한 요셉의 얼굴은 어땠을까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어땠을까요?
930년 내내 자신의 죄의 결과를 느낀 아담의 마음과 얼굴은 어땠을까요?
...
...
돌아가신 모 목사님우리 교단 여러 현실들 앞에서 그렇게 우셨다니...
속이 얼마나 상하셨을지 짐작이 됩니다.
지금도 방방곡곡에서 속을 흝어가며
영혼을 위해 애절히 몸부림치는 분들 계실 겁니다.
밤새 기도하시고 내려오시고 가르치시고,
쉼 없이 밀려오는 이들 치료해 주시고
끼니를 이을 겨를도 없으신 고단한 삶...삶...
거기에다 원수들은 십자가를 재촉하고
주님을 거절하는 백성들의 불쌍한 처지들...
그 모든 게 사랑하는 이의 가슴을 얼마나 도려냈을까요?
사랑 넘치는 하나님의 심장이 인간 예수님의 가슴에 얹히셨으니
인간의 몸으로 얼마나 견딜 수 있었을까요?
(800cc 차체에 5000cc 엔진이 얹히면 차가 견디지 못하는 것 같이)
그 큰 하늘 사랑을 육체가 견디지 못하시고
마침내 심장은 터지고 맙니다.
아~ 한심하고 대책없는 우리지만
어느 인생보다 마음도 얼굴도 그렇게 상하신
우리 주님을 떠올리면
가슴 아려옵니다.
그러면서도 더 슬픈 건
여전히 피둥 피둥한 우리의 모습에...
그래서 더욱더 복받치게 됩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내 문제, 내 일, 내가족의 관심에서 벗어나
수많은 지구촌 영혼들의 구원에 대한 큰 근심으로
가위눌리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120년 내내 아무 수확도 얻지 못해
혼자 고민하고 발을 구르며 근심으로 잠 못 이뤘던
그래서 수척해질대로 수척해졌을 노아 할아버지처럼
세상을 향해 아픈 속을 가진
속이 가득찬, 영적으로 철이 들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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